펠레 영원한 축구 황제 사망 원인 프로필 본명 재산 부인 아내 가족 수상 기록 딸 임종
이름
펠레
Pelé
본명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3][4]
Edson Arantes do Nascimento
출생
1940년 10월 23일[5]
브라질 합중국 미나스제라이스 주 트레스 코라송이스[6]
사망
2022년 12월 29일[7] (향년 82세)
브라질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스라엘 병원
국적
브라질 국기
브라질
신체
173cm[8]
주발
오른발 (양발)[9]
등번호
10번[10]
포지션
공격수,[11] 공격형 미드필더[12]
유스 클럽
바우루 AC (1952~1956)
프로 클럽
산투스 FC (1956~1974)
뉴욕 코스모스 (1975~1977)
통산 득점
757골
국가대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 92경기 77골[13] (브라질 / 1957~1971)
가족
아버지 돈지뉴Dondinho[14]
어머니 셀레스테 아란치스Celeste Arantes[15]
남동생 제카 나시멘투Zeca Nascimento
여동생 마리아 루시아 나시멘투Maria Lúcia Nascimento
2남 1녀 중 첫째
슬하 2남 5녀
종교
가톨릭
후원사
푸마 로고푸마
https://www.instagram.com/pele/
수상경력
FIFA 발롱도르 명예상: 2013
FIFA 월드컵 실버슈: 1958[참고][36]
FIFA 월드컵 베스트 영플레이어: 1958[37]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58, 1970
FIFA 월드컵 역대 베스트 XI: 1994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 2002
FIFA 100: 2004
FIFA 세기의 선수[38]: 2000
FIFA 공로장: 1984, 2014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MVP: 1959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득점왕: 1959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73
타사 브라지우 득점왕: 1961, 1963, 1964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득점왕: 1957,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9, 197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1965
인터컨티넨탈컵 득점왕: 1962, 1963
NASL 올스타팀: 1975, 1976, 1977
20세기 월드팀: 1998
20세기 남아메리카팀: 1998
FWA 공로상: 2018
볼라 지 프라타: 1970
월드 스포츠 1950~1970년 세계 베스트 XI: 1970
타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39]: 1999
발롱도르 드림팀: 2020
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2013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BBC 올해의 해외 스포츠 스타: 1970
BBC 올해의 운동 선수 평생 공로상: 2005
로이터 20세기의 운동 선수: 1999
IOC 20세기의 운동 선수: 1999
IFFHS 20세기의 선수: 1999
IFFHS 올타임 월드 드림팀: 2021
IFFHS 올타임 남아메리카 드림팀: 2021
IFFHS 올타임 브라질 드림팀: 2021
아스 역대 베스트 XI: 2021[40]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Edson Arantes do Nascimento)로 펠레(Pelé)라는 애칭으로 유명하다.
FIFA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로, IOC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되었다.[16]
‘축구 황제’(The King of Football)'라는 칭호가 붙은 선수로[17] 브라질 정부에서 펠레의 선수 생활 당시에 유럽 구단[18]의 펠레 영입을 막기 위해 그를 국외 반출 불가의 국보로 지정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펠레는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고 축구를 좋아했으며, 파일럿을 비롯한 여러 장래희망을 갖기도 했고, 가끔 무서운 일이 생기면 어머니에게 응석도 부리는 약간 소심할 뿐인 평범한 아이였다. 당시의 펠레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멘토는 아버지 돈지뉴였는데, 아버지는 자신이 못 이루었던 꿈을 아들에게 물려주어 그를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만들고자 하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노하우를 펠레에게 전해주었다. 축구 선수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스킬과 마음 가짐은 물론이고 심지어 관중을 다루는 법까지 가르쳤다.
펠레가 10살이 되던 해에, 브라질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마라카낭의 비극이 일어났다. 당시 펠레는 라디오로 경기 중계를 듣다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으로 보았고, 아버지를 위해서 브라질을 월드컵에서 우승시킬 것을, 그리고 우루과이에 복수할 것을 예수상 앞에서 맹세한다. 자서전에 보면 예수상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고 나와 있다. 펠레는 실제로도 신앙심이 매우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펠레'로 알려진 그의 이름은 별명이다. 아버지 돈지뉴[19]의 친구였던 골키퍼 "빌레(Bilé)"를 어린 펠레가 제대로 발음을 하지 못하고 "펠레"로 발음해서 생긴 별명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고,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다. 1977년에 발간된 펠레의 자서전에서조차 펠레라는 별명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적혀 있었고, 한참 후인 2010년 10월 경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는 펠레 본인이 이와 같이 밝혔다. 참고로 빌레는 포르투갈어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기적이라는 뜻이고 펠레는 흑진주라는 뜻으로 붙여진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어린 시절의 펠레는 자신의 별명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펠레가 살던 골목의 동네 친구들이 그를 펠레라고 부르며 놀려 대기 시작했고, 펠레는 그 때문에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 펠레의 원래 이름인 이지송(Edison)은 아버지 돈지뉴가 지어준 이름인데, 이것은 우리가 다 아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이름을 따서 붙여준 것이다. 이는 돈지뉴가 에디슨을 존경하여 그와같이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인데,[20] 이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던 펠레는 이지송이라는 이름을 무지 사랑해서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던 주위 사람들과 자주 다툰 것이다. 덧붙여 돈지뉴는 펠레의 이름을 호적에 올릴 때 i자를 빼고 "이드송(Edson)"으로 올리려고 했지만 서류 절차상 실수가 생겨서 기록상으로는 이지송이 되었다.
어찌저찌 펠레란 별명이 굳어져버렸고 학교에서도 그를 펠레라 부르기 시작하자 그는 학교에서도 싸웠고 이틀간 징계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급기야 아버지까지 그를 펠레라 부르게 되자 그걸로 게임 끝. 후에 스타가 된 후 그는 펠레란 이름을 신이 주신 이름이라며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펠레의 가족들은 그냥 이지송의 애칭인 지쿠(Dico)라고 불렀다.
축구황제' 펠레, 향년 82세로 별세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혀온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가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
AP통신은 현지 시각 29일 "월드컵에서 3차례나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펠레가 사망했다"며 "그의 에이전트가 사망을 확인해줬다"고 보도했습니다.
펠레의 딸인 켈리 나시멘투도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영원히 사랑합니다. 편안하게 쉬세요"라는 글과 함께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렸습니다.
지난해 9월 오른쪽 결장에 암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은 펠레는 이후 화학치료를 받으며 병원을 오갔고, 지난달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정신 착란 증상 등으로 재입원했습니다.
앞서 그는 병상에서도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탈락한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간판스타 네이마르를 향해 "선수로서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영감을 주는 것"이라고 격려를 보냈습니다.
또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에게 "그의 축구 인생에 걸맞은 결과"라고 축하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펠레는 현역 생활 동안 천363경기에 출전해 천281골을 터트리며 '축구 황제'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A매치 91경기에 나서 77골을 작성한 펠레는 월드컵 14경기에서 12골을 득점했고,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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